중고거래를 주제로 한 다섯 개의 단편영화를 엮은 장편 옴니버스 영화다. 각 에피소드에는 LG트윈스 점퍼, 수면 보조기구 ‘스위치’, 일렉트릭 기타, 삼성 재믹스, 세계문학전집 같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 중고물품이 등장하고, 중고 거래가 완료될 때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난다. 전직 야구선수와 꼬마 야구팬, 재수생과 여학생, 사형집행 교도관과 록밴드, 기자와 사형수. 작가 지망생과 아버지 등 각 중고 물품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은 서로의 인연을 알지 못한 채 각자에게 부여된 이야기 속을 질주하다가, 서로 만나기도 하고, 스쳐 가기도 하면서 계획하지 않은 사건들과 마주한다. 조경호 감독은 뛰어난 상상력과 자연스러운 서사가 돋보이는 각기 다른 다섯 개의 이야기와 끊임없이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을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는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이런 영화가 쉽게 빠지곤 하는 교훈적 메시지의 함정을 잘 피하면서, 동시대 청년들의 풍경과 ‘잃어버린 꿈’이라는 주제를 따뜻하게 담아낸다. 여러 가지 면에서 옴니버스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짐 자무쉬 감독의 <미스테리 트레인>(1989)과 <지상의 밤>(1991)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근래 나온 어떤 옴니버스 영화보다 흥미롭고, 최근 어떤 한국영화보다 유쾌하고 도전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