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무주산골영화제 한국장편경쟁부문 '창'섹션 시상식의 수상작 발표 및 심사평을 공개합니다.​

□ 뉴비전상(대상) : 셀프-포트레이트 2020 (이동우 감독)

‘영화 만들기’란 한편으론 손에 잡히지 않는 환영을 쫓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환영을 쫓아 살아온 인물을 우연히 만나 영화 작업으로 확장시킨 감독의 성실함과 애정 어린 시선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끝나는 순간까지 소재주의와 선정성과 싸우는 작업이 되었으리라 짐작케 합니다. 영화는 168분이란 시간 동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호기심을 피하고 실재하는 현실의 불편함을 마주하는 대담함이었고 인간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려는 절박한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셀프 포트레이트 2020>의 긴장감이야말로 다큐멘터리 실천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이동우 감독이 더 많은 불편한 질문과 답을 구하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며 뉴비전 대상을 드립니다.

□ 나봄상(감독상) : 권민표, 서한솔 감독 <종착역>

초여름의 싱그러운 여린 잎을 보는 듯한 맑고 경쾌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삶에 대한 진지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 끝으로의 여행은 지금 시대의 야만적인 폭력을 생각하면 어쩌면 위험한 도전처럼 보입니다. 많은 영화들이 나쁜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십대를 그리거나, 위태로운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십대 아이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건 그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제언과 같다고 믿습니다. 이 모험을 통해 네 명의 여성-중학생들이 자신의 세상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십대 여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 준 권민표, 서한솔 감독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종착역>에 감독상을 드립니다.

□ 아빈 크리에이티브 상 : 스톤 존스톤(Stone Johnston) 촬영감독 <둥글고 둥글게>

올해 처음으로 신설된 아빈 크리에이티브상은 돋보이는 성취를 거둔 영화의 해당 분야 스태프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국현대사를 새롭게 조망하기 위해 기획·제작된 <둥글고 둥글게>는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어 역사적 사료의 이미지를 두껍게 만들어 지적이고 흥미로운 영상언어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색과 빛을 조율하여 새로운 시점을 만들어 낸 촬영감독이자 편집자이자 컬러리스트인 스톤 존스톤 감독의 창의적인 협업이 공을 더 했다고 생각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자를 결정했습니다.

 - 심사위원 : 김일란(다큐멘터리감독), 박관수(기린제작사 대표), 장건재(영화감독)

□ 영화평론가상 : 셀프-포트레이트 2020 (이동우 감독)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 한국장편영화경쟁부문인 영화‘창’ 섹션에는 총 9편(극영화 6편, 다큐멘터리 3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저 마다의 고유한 빛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 단 한편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각 작품에서 나타나는 시선, 이야기, 미학 등을 중심으로 긴 숙고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이란희 감독의 <휴가>, 이동우 감독의 <셀프-포트레이트 2020>, 권민표, 서한솔 감독의 <종착역>으로 논의의 범위를 좁혔고, 최종적으로 <셀프-포트레이트 2020>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올해 영화‘창’ 섹션을 통해 소개된 작품들은 동시대 한국 독립예술영화에서 나타나는 어떤 경향과 도전의 좋은 사례들로 기억될 것이다. 극영화들 중 일부는 유년기의 한 단면을 리얼리즘적인 양식으로 그려내거나 옳고 그름 사이에서 윤리적인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장르적인 틀 속에서 녹여냈다. 다큐멘터리 작품의 경우 장기간의 리서치와 참여 관찰을 통해서 연출자의 주관성을 투영하거나 영화적 형식에 대해 성찰했다. 상영작 중 상당수가 분명한 소재, 주제, 장르, 양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그 작품들은 흡사 주소를 가지고 있는 집이나 마을처럼 분명한 자기 위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늘 곁에 있어 친숙하고, 자주 만나서 반갑고, 찾기 쉬워 편안한 그런 영화. 대중적 공감과 제도적 합의가 가능한 그런 영화.

하지만 종종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작품들이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동우 감독의 <셀프-포트레이트 2020>는 지도에 없는 길을 걷는 영화에 가깝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카메라의 움직임, 초점이 맞지 않는 혹은 저화질의 화면, 롱테이크, 비선형적인 편집 등은 이 영화의 돌연변이적인 성격을 대변한다. 또한 이 작품은 노숙인, 빈곤, 알코올 중독과 같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면서도 그것들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내고, 연출자의 고민을 반영하고, 연출자와 출연자 사이의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따른다. 그리하여 출연자 개개인의 초상은 그들이 속한 집단의 초상으로 확장되고, 출연자들과 연출자들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주인이다. 그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한 권리와 함께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주인인 동시에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의 주인이다. 이동우 감독의 <셀프-포트레이트 2020>가 관객인 우리에게 어떤 자극과 용기를 준다면, 그것은 이 작품이 우리 시대가 망각하거나 잃어버린 주인의식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되살려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도전적인 자세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끝으로 아쉽게 수상작이 되지 못했지만, 올해 무주산골영화제 영화‘창’ 섹션을 빛내준 다른 상영작들에게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바이다.

- 심사위원 : 남다은(영화평론가), 이도훈(영화평론가), 이나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