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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 - 무주 셀렉트 : 동시대 시네아스트 '하마구치 류스케'

2018년부터 시작된 ‘무주 셀렉트: 동시대 시네아스트’는 5편 내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전 세계 영화감독 중 동시대 영화미학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해외 감독을 매년 1명씩 선정해 그의 주요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평론가의 비평과 함께 그의 영화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감독 특집 프로그램이다. 2018년, 칸영화제의 총애를 받아온 영국의 대표 여성 감독이자 관능과 정념의 시네아스트 안드레아 아놀드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동시대 유럽을 대표하며,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영화감독으로 평가받는 윤리와 경계의 시네아스트 루벤 외스틀룬드를 거쳐, 2020년에는 미국의 풍경을 담아온 명상의 시네아스트 켈리 라이카트를 세 번째 시네아스트로 선정했고, 2021년에는 저항과혁명의 시네아스트 브라질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을 네번째 시네아스트로 선정했다.

2022년, 팬데믹 시대의 끝자락에서 10회를 맞이하게 된 무주산골영화제가 선정한 다섯 번째 동시대 시네아스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장˙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인간의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온 스토리텔러이자 동시대 가장 중요한 시네아스트의 자리에 오른 일본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다. 2020년 하마구치 감독은 2편의 서로 다른 장편영화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2개의 국제영화제에서 각각 큰 상을 받았다.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 <우연과 상상>으로 2021년 3월에 개최된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그로부터 4개월 후인 7월에 개최된 칸영화제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장편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일약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2015년 <해피 아워>로 본격적인 해외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 6년, 2018년 <아사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지 불과 3년 만의 일이었다. 그의 연이은 수상 소식은 갑작스럽고,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잘 몰랐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마구치 감독이 벼락스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오래 전에 시작되었고, 해외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과 공감을 끌어낸 <드라이브 마이 카>와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보여준 <우연과 상상>은 오랫동안 성장과 진화를통해 완성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영화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변화했고, 성장했으며, 진화해왔는지, 조망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올해 무주산골영화제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동시대 시네아스트로 선정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마구치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를 통해 담는 세계가 현실 세계에 바짝 닿아있다는 점이다. 그가 영화에 담는 모든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통속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는 연애와 사랑, 결혼과 죽음, 만남과 이별과 같이, 현실에서 쉽게 맞닥뜨리는 주제들을 끊임없이 다루어 왔고, 여기에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사에 접목시켜왔다. 그는 인물들의 끊임없는 대화로 서사를 끌고 가면서 솔직함과 거짓의 경계에서 진실이 밝혀지는 타이밍을 자유자재로 조절함으로써 극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또한 촬영 현장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서, 비전문 배우와의 연기 워크숍을 통해 훈련되어 표출되거나 우연히 발생하는 인물의 감정과 욕망의 조각들을 정교하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러다가 결국 마음의 깊숙한 곳이 움직이는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는데, 이 마법 같은 순간은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사회적 맥락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개인적인 세계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별 관심이 없고, 서로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상대의 말과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미시적인 세계다. 이런 의미에서 하마구치의 세계는 부분적으로 판타지적 요소가 제거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와 닮아있고, 하마구치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종종 하루키적 인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마구치 영화의 놀라운 점은 하마구치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끝까지 잔잔하고 조용한 정의 세계에 머무르거나, 냉소와 허무의 세계로 퇴행하지 않고, 거기서 앞으로 한 발 더 움직인다는 점이다. 그 미시적인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이다. 그의 영화에 대한 공감과 감동은 바로 이 과정에서 생겨나고, 우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하는 그만의 방식은 동시대의 전 세계 좋은 감독들 사이에서도 확실히 독창적이며 창조적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들이 남녀노소, 일반관객과 시네필을 가리지 않고 공감과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장편영화 6편과 단편영화 3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와 최근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2022)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 2013년부터 배우 지망생들과 영화 연기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연기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온 안선경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해온 정지혜 평론가가 함께하는 토크 시간도 함께 마련된다. 또한 영화제 기간에 맞춰 하마구치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공식 책자가 출판된다. 한국의 이나라 평론가와 일본의 미우라 데쓰야 평론가의 감독론과 정지혜 평론가의 개별 작품론이 수록되어 있으며, <정말 먼 곳>(2020)을 연출한 박근영 감독, <소피의 세계>(2021)에 출연한 문혜인 배우,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동료 감독인 미아케 쇼, 그리고 이환미 번역가가 쓴 하마구치 영화에 대한 에세이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후 한동안 일본을 대표할만한 신세대 감독의 부재 속에서 갑작스레 부상한 하마구치 류스케. 우연의 방식으로 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우연과 관계의 시네아스트인 그의 영화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